내가 준형이와 준하를 만난 건 2년 전이다. 아홉 살과 일곱 살, 두 손자를 데리고 도서관을 찾아온 할머니는 “다른 데 가지 않게, 그저 봐 주세요” 했다. 너무 이른 나이에 같이 살게 된 준형이 엄마와 아빠. 아빠는 사고 쳐 형을 살고, 엄마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2학년 나이의 준형이는 글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아이들 학교 보낼 형편도 안돼요.” 할머니는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 된 걸 모른다. 육성회비부터 걱정했다.
할머니를 대신해 학교를 찾아갔다. 준형이를 교장선생님께 소개하고 반을 배정 받았다. 담임선생님과 인사하던 날, 아이들이 준형이에게 묻는다. “니네 엄마니?” 준형이는 웃기만 한다. 막막한 웃음.
일곱 살 준하는 저소득층 아이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유치원에 보내자 했다. 준하는 어린아이였다. 유치원에서 적어준 준비물을 고르며 흥분했다. 문방구를 온통 헤집어 마음에 드는 실내화와 크레파스 따위를 찾아냈다. 준형이와 준하는 도장 찍듯 날마다 도서관에 왔다. 그러나 둘은 가끔씩 엄마와 함께 있는 다른 아이들을 쓸쓸하게 쳐다보곤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방과후에도 다니러와 저녁식사를 해결한다.
‘도서관의 지역사회 프로그램’은 “도서관은 빈민의 대학이다. 도서관은 빈민의 지적 생명선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가난한 사람들은 도서관을 찾지 못한다.
가난은 돈이 없다는 것 이상으로 모든 종류의 자원이 없는 것이고 자원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학교에 보낼 수 있는지 몰랐던 준형이 할머니, 배경이 되어줄 엄마가 없어 도서관이 편치 않았던 준형이와 준하, 도서관은 내 문화가 아니라고 마음 닫아버린 가난한 사람들….
‘포스 월드 무브먼트’라는 NGO는 거리도서관을 한다. 도서관이라는 딱딱한 벽을 넘지 못한 가난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거리를 직접 찾아가 자리를 깔고 그 곳에 책을 풀어 놓는다. 거리도서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엄마 대신. 거리도서관 프로젝트는 또 아이들이 쓴 글로 백과사전을 만들었으며, 합판으로 큰 공룡을 만들어 마을전시회도 했다.
아이들은 거리도서관에서 컴퓨터도 만지고, 수화나 모스 부호처럼 다양한 모양의 통신도구들을 직접 다뤄보고 다른 나라 언어를 들어보기도 했다. 이미 있는 문화를 만나고 새 문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다른 여느 아이들처럼.
‘포스 월드 무브먼트’를 처음 만든 조셉 레진스키 신부는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동시대를 앞서나가야 하고 현대세계의 이용도구와 사람들 사이에서 창조된 신문화에 능숙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2,000원짜리 급식보다 중요한 건 문화와 지식을 주는 일인지 모른다. 그래야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어린이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