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서울의 한 식당. 초등학교 교장 몇 명이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이들은 꽤 높은 소리로 이야기를 했고, 대화 중간 중간 "넌 (방과후 학교) 업체한테 (돈을) 얼마 먹었느냐(받았느냐)?"라는 등의 말들이 오고 갔다.
정보 당국과 교육계에 따르면, 같은 식당에서 서울 남부지검 관계자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교장들의 대화를 들었고, 다음 날 다시 식당에 찾아가 교장들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수사에 착수했다. 이렇게 시작된 수사가 서울 남부지검이 3일 발표한 '방과후 학교 업체 비리 적발'의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이날 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배성범)는 김모(60)씨 등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장 5명을 방과후 학교 업체 선정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위탁운영 업체 A사 대표 이모(58)씨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된 교장 5명 중에 '식당 모임' 참석자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검찰은 "식당 모임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수사 결과, 교장들은 2003년 4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A사가 방과후 학교 영어·컴퓨터 교실 위탁운영업체로 선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례비 등의 명목으로 3~16차례에 걸쳐 700만~2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뇌물을 주지 않으면 업체에 "방과후 교실을 폐쇄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학생들이 업체에 내는 영어 수강료 10만원 중 1만원을 자기 몫으로 내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뇌물을 주지 않았더니 교장이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다"고 진술한 업체도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절차상으로는 학교운영위원회가 방과후 학교 업체를 선정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교장이 전권(全權)을 행사하고 있어 이런 범행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잇따른 인사비리·뇌물 사건으로 뒤숭숭한 서울시교육청의 '불운(不運)'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엔 임모(50)와 고모(49) 두 장학사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여성 장학사 고씨가 임씨의 머리를 하이힐로 내리찍으며 싸운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이 '교직 매매(賣買) 사건'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고씨가 경찰에서 "이 사람(임 장학사)이 장학사 시켜주겠다고 돈을 받아 갔다"고 폭로한 것이다. 결국 임 장학사는 고 장학사 등 2명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13일 구속됐다. 서울시 교육청에선 잇단 관내 비리사건이 술집·식당에서 촉발되자 '음식점의 저주'에 걸렸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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