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나를 담대하게 만든다

조서환 경영학 박사 KTF 부사장

나는 혈기 넘치는 23살 육군 소위 때 오른손을 잃었다. 부대 내 수류탄 사고였다. 내가 쓰러지는 모습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들 것이 있는 곳까지 가는데, 피가 파악 터져 나오면서, 머리는 깡통 찌그러지듯이 마구 오그라들고, 목이 지지직 타 들어 가는 것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물…물…물…' 정신 없이 물을 찾자 누군가 내 입에 제 침을 발라줬다. '더럽게 왜 침을 바르나' 생각하면서도 그걸 빨아먹었다.

차는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헬리콥터는 막 뜨려고 들썩들썩 하고, 거기서 하얀 천사들이 사악 내려오는 모습까지 보고 의식을 잃었다. 사고 후, 고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애인 생각이 났다. 머리며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있는 미이라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한 달 전 면회 왔을 때만 해도 오른손이 있었는데, 한 손이 없는 상태로 그녀를 어떻게 만날지 걱정이 됐다. 연락하자니 두렵고, 안 하자니 보고 싶고,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이고 사랑이라면 사랑인데 나의 다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너무도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내 가슴은 보고 싶어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됐다.

결국 힘들게 연락을 해서 애인이 왔는데, 그때 나는 왼손은 링거를 꽂고, 오른팔은 붕대로 칭칭 감아 공중에 매달고 누워서 어머니가 떠먹여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고향에 흐드러지게 핀 산도라지 꽃 빛깔의 코트를 입은 하얀 얼굴의 그녀가 통합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 모습이 눈부시게 예뻤다. 나는 속으로 간절히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존심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만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한 달 전에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괜히 물어봤다가 아니라고 하면 어쩌나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쉽게 대답하지 않도록 시간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간 후 오랫동안 아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날 사랑하냐고 묻고 싶다가도, 이 사람 보내줘야 하는데 나랑 헤어지면 누가 사랑해줄까 싶기도 하고, 이렇게 말없이 서로 바라만 보다가 한 30분쯤 지났을까 마지막 남은 용기를 짜내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도…나…사랑해'? 그랬더니 말없이 '끄으덕…끄으덕…' 고개를 크게 두 번 끄덕이는데, 그 모습이 세상에나 얼마나 예쁜지 꼭 천사 같았다. 세상을 다 얻어도 그보다 기쁠 것 같지 않았고, 기쁨과 행복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가슴이 터질 것처럼 기뻤던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건 너무 이기적이다. 왼손 하나만 가지고 이 예쁜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텐데, 진짜 사랑한다면 이제 그만 이 예쁜 사람을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 당신 사랑할 수 없다. 그러니 얼굴 봤으면 이걸로 정리하고 끝내자'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눈시울이 빨개지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는 당신한테 내가 필요 없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부터는 당신 곁에 내가 있어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확인했다는 아까 행복에 버금가는 커다란 행복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소중한 사람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줄까' 이것 말고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태산만큼 큰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거인'이 깨어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영문학과에 가기로 결심하고 병실에서 편입 시험공부를 시작했는데 아픈 몸에도 한 달 동안 예상시험문제를 모두 외워버렸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한번 지독하게 맘먹으니까 세 번 정도 읽으면 그냥 다 외워졌다. 그때 아내는 나보고 '천재'라고 했고, 다른 사람들도 나보고 사람이 아니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때 나를 그렇게 강하게 만든 것은 바로 아내를 행복하게 해줘야겠다는 꿈이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영리한 머리를 갖고도 무기력하고, 어떤 사람은 10번을 이야기해야 제대로 이해를 하면서도 눈을 의심할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 비결이 바로 꿈이라고 본다. 나를 강하게 만든 것은 내가 가장 힘들 때 내 곁에 남아준 아내였다.

여러분들의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이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는 꿈이 있다면 인생이 행복해진다. 가진 것 없어도 초라하지 않은 때가 바로 10대다. 혹 어떻게 살지,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인생의 선배로서 먼저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다.

[출처: 십대들의쪽지 230번째 이야기 中에서 http://www.teen4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