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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훈이에게 "공부해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에 한글도 깨우치지 못하고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에서도 성적표는 늘 '양'이나 '가'가 많았고, 남편은 아이의 성적표를 보고 너무 실망했는지 "아이 성적이 이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내버려 둘 수가 있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 성적이 엉망인데도 학원 하나 안 보내고 매일 놀리기만 했으니 주변에서는 아마도 나를 '아이 교육에 무관심한 엄마', '애를 망치는 엄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건훈이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키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었다.
첫째는 건강이었다. 둘째는 영어였고, 셋째는 실컷 놀리자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중요한 것들, 즉 인간관계, 자연과의 친화, 사고력, 판단력 등을 배우는데, 우리 나라 여건 상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제대로 놀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오히려 실컷 놀아본 아이들이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주변에 친한 엄마들과 아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아이들이 지금 학습지 몇 장 더 하고, 학원 몇 군데씩 다닌다고 실력이 월등하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남들 다 하는데 안 하면 불안해서요. 그리고 아이에게 지금 공부를 시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많이 알기를 바란다기보다 공부 습관을 잡아주려는 거죠"
하지만 나는 스스로 책만 잘 읽으면 공부 습관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차분하게 앉아 책을 보기만 해도 과외나 학원, 학습지를 푸는 것보다 열 배 백 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아이와 마주 앉아 책을 읽었다.
내가 건훈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실컷 놀릴 수 있었던 것은 어릴 적 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대단한 골목대장이었다. 성적은 최하위를 맴돌았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내게 억지로 공부 하라는 말씀은 한번도 하지 않으셨다. 대신 점심시간이면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셔서 교실 문 앞에서 기다리곤 하셨다. 그래도 공부 못하는 딸이 많이 걱정이 되셨는지 집 옆 빈터에 집을 한 채 지으시고 우리 학교 선생님을 모셔다 살게 했다. 선생님에게 과외를 부탁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과외를 받아도 내 성적은 오를 줄을 몰랐고, 나는 중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 반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두 합격한 것을 보면 나는 거의 꼴찌나 다름없었던 것 같다. 다시 1년을 공부해서 결국 그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해 해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하여 처음 본 시험에서 2등을 할 수 있었다. 교실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새벽에 학교 담장을 넘어 들어가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오는 날도 많았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공부란 억지로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때에야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건훈이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꿈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려는 의지만 있으면 공부의 동기는 확보된 셈이며, 동기만 있으면 언젠가는 스스로 알아서 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건훈이가 중학교 들어갈 즈음에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제 입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어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건훈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늘 "넌 중학교 들어가면 잘할 거야. 공부는 하면 돼."하고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말해주기는 했지만, 막상 건훈이의 입에서 공부해야겠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나 기쁘고 반가왔다.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의 뇌는 처음부터 타고난 부분과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형성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유전된 능력이야 어쩔 수 없지만, 출생 후에 형성되는 부분은 노력 여하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어릴 때 교육적 자극을 많이 받을수록 사람의 뇌도 더 잘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기억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적극적 활동으로 인한 자극은 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수동적 자극은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본인이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교육적 자극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머리도 좋아지고 공부의 효과도 나타난다는 말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만들려면, 우선 공부의 동기를 찾게 해 주어야 한다.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아이들은 어디를 가서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 건훈이가 모든 과목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동기를 찾은 후에는 그런 과목들도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결국에는 공부의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 '엄마의 말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작가 박동주 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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