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 죽전中 ‘밤샘독서' 열기
저녁7시~아침8시
“지금 동이 트고 있다.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생각해 보면 뿌듯하다. 미친 듯 밤새워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1학년 6반 박지혜)
“책을 읽는 동안 조금씩 성장하는 내 생각의 키를 실감한다.”(1학년 7반 박지인)
‘놀토(노는 토요일)'이던 지난 11일 아침 8시. 경기도 용인 죽전중학교 1학년 36명은 그제서야 하교했다. 전날 저녁 7시 학교 도서관에 모여 ‘밤샘 독서'에 들어간 지 13시간 만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책을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친구들과 밤새우면 재밌을 것 같아서' 왔다고 한다. 전에 밤을 지새 본 적이 있는 학생도 절반이 안 됐다. 그나마 이유도 ‘몰컴(몰래 컴퓨터) 하느라고' ‘만화책 보다가' ‘수학여행 갔을 때' 정도다.
하지만 독서가 시작되자 의젓해졌다. ‘오만과 편견' ‘토지' ‘창가의 토토' 같은 제법 수준 높은 책을 골라 펼쳤다.
밤 10시쯤 교사들이 준비한 학습 동영상을 보고 잠시 토론한 다음 자정부터 다시 독서에 들어갔다. 밤 1시. 또렷한 눈들이 허물어지고, 허리도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는 퀭한 눈을 자꾸 껌벅였고, 또 한 친구는 잠을 쫓느라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자기 뺨을 철썩철썩 때리기도 한 친구도 있었다.
한 친구가 아빠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피자 먹고 싶어.'
그 메시지를 받은 아빠가 직접 피자 2판을 들고 왔다.
“배달이나 보낼까 했는데, 궁금해서요. 밤새워 본 적 없는 앤데….”
밤 2시에도 문이 빠끔히 열렸다. 어떤 인기 아버지다.
“실은 책하곤 담쌓고 살던 앤데, 저녁도 안 먹고 밤새워 책 읽으러 갔다기에….”
“무아지경 책에 빠졌다가 여명(黎明)을 맞을 때의 벅찬 느낌을 요새 아이들도 느껴봤으면 해서 시작했어요.”
‘밤샘 독서'는 작년 3월 부임한 한경희 교장의 아이디어다. “즐길거리가 너무 많아 생각이 단편적이고 집중력도 약한 아이들을 ‘책의 바다' 속에 풍덩 빠뜨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쉬웠을 리 없다.
“애들도 교사도 힘들어서 안 됩니다”
“학대(虐待)로 비쳐지면 어떡하죠?”
교사들의 반발이 컸다. 그래서 일단 학생회 간부와 3학년만 해보자고 설득했다. 한 달에 한 번만, ‘놀토'에 하기로 했다.
결과는 좋았다. 많은 아이들이 “내가 이렇게 책에 빠질 줄 몰랐다”고 했고, 학부모들도 “새벽 서너 시까지 공부하기도 한다”며 좋아했다.
독서지도 담당 교사는 “매달 신청자가 넘쳐 도서관에 입력된 ‘독서 마일리지' 순으로 뽑는다”고 했다.
사실, 이 학교의 ‘독서 교육'은 좀 극성스럽다. 매일 아침 30분씩 책을 읽고, 방학 소집일에도 도서관에 모여 3시간씩 독서한다. ‘독서퀴즈' ‘독서왕' ‘독서 골든벨' 대회도 있다.
아직 ‘어린이'에 가까운 1학년을 대상으로 처음 해본 이날의 ‘밤샘 독서'도 성공이었다. “복도에라도 엎드려 자고 싶다”던 아이도, 한숨만 줄줄이 쉬어대던 어떤 친구도...
어쨌든 ‘밤샘 독서 인증서'를 받아 쥐었다. 찰칵! 새벽 운동장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은 “머리는 좀 띵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밤”이라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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