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157명 수뢰… 건국이래 최대 교육 비리
수학여행업체 등으로부터 학생 1인당 1만원꼴 받아… 퇴직 교장이 알선 역할도
학교장·장학사·행정실장 등 51명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수도권 전·현직 학교장 157명이 수학여행 등 단체행사 과정에서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에 대해 경찰이 본격 수사를 진행하면서 208명 규모의 '건국 이래 최대 교육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지난 연말부터 드러난 시설·인사비리에는 주로 장학관·장학사 등 교육전문직 공무원이 연루돼 있었지만, 이번에 새로 밝혀진 수학여행 비리는 학교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학교장들이 주도한 것이라서 '제왕적 교장 권한'에 대한 비판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비리 수사는 특히 초등학교에 집중돼 현직 서울시 초등학교 교장 7명 중 1명(588명 중 87명) 꼴로 검·경의 수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초유의 사태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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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원 이하는 맘대로 수의계약
서울 S초등학교는 지난 2009년 이후 수학여행·수련회·현장학습 등 교외행사 대부분을 H관광을 통해 다녀왔다. S초교 교장은 수기(手記)로 작성된 견적서만 제출한 H관광을 골라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맘대로 계약'이 가능했던 것은, 서울교육청 수학여행 지침상 총 경비 2000만원 이하까지는 한 업체에서만 견적을 받아도 수의(隨意)계약을 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총 경비 5000만원까지도 두 곳 이상 업체에 견적을 받기만 하면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업체 선정은 사실상 교장이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
서울교육청은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도 허용한 것이 "학교장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교육청 관계자는 "'최저가 입찰' 방식 등으로 업체를 선정하게 되면 안정성이 떨어지는 업체가 들어올 수 있다"며 "학생 안전을 고려하면 학교장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는 게 맞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장들은 이를 악용했고, 수의계약은 '뒷돈 구멍'으로 변질됐다. 학교장들은 수학여행 업체로부터 2박3일을 기준으로 학생 한 명당 8000~1만2000원씩 '뒷돈'을 받았고, 버스회사엔 한 대당 하루 2만~3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학교장들에게 돈을 준 업자들이 다음 번 수련회·소풍 때도 선정되는 방식이었다"며 "심지어는 행사가 취소되면 돌려주기까지 하는 '수수료' 개념으로 '뒷돈'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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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교장이 업자와의 연결고리
대부분 학교의 교장실은 행정실 안쪽에 위치해 있어 약속 없이 직접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고, 학교장 역시 소문이 도는 것을 극도로 꺼려 업자와의 공개된 만남을 피한다. 경찰도 29일 브리핑에서 "학교장들은 심리적으로 약하니 보도를 구체적으로 하지 말아달라"고 수차례 언급했다.
그런데도 학교장들이 업자와 만나 뇌물을 받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본지 취재 결과, 전직 교장들이 '연결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 계약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A씨는 본지 통화에서 "학교에 업자들이 찾아가도 혼자서는 학교장을 만나기 힘들다"며 "상당수 업체들이 은퇴한 전직 학교장을 고문으로 앉히고 영업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직 학교장을 통해 현직 학교장을 만나 식사나 인사를 하고 '뒷돈'을 건넨다는 것이다.
서울교육청의 관계자는 "은퇴한 선배들이 아예 업체를 차리고 장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교장 입장에서도 선배가 찾아온다는데 안 만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경찰 역시 학교장이 운영하는 업체를 주시하고는 있지만, 아직 혐의를 잡아내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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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교장'이 근본 원인
학교장 뇌물 수수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선 부적격 칠판을 사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긴 현직 교장 13명이 적발됐고, 그해 8월에도 운동기구를 납품하게 해주는 대가로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초등학교장이 적발된 바 있다.
일선 교장의 이러한 구조적 수뢰 관행은 교장 1인에 대한 권력집중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다. 교장이 학교와 관련한 거의 모든 재정 권한을 갖고있고, 근무평정 등 교사들의 '생살여탈권'까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3∼5년을 주기로 실시되는 교육청 종합감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상부기관의 어떤 견제도 받지 않아 "치외법권 지역에 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막강한 학교장 권력은 오히려 최근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교육 당국은 최근 '학교장 책임경영' 개념을 일선 학교에 도입하면서, 학교장의 교사 초빙권, 전보 유예 요청권 등 인사 권한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최근 학교장의 권한을 너무 늘리다 보니, 교장이 조금이라도 반대 의견을 내는 교사들에겐 '강제 전보시키겠다'는 말까지 퍼붓는 실정"이라며 "학교장 책임경영에 앞서 학교장들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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