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장 김 양
선열들의 애국충정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철기 이범석 장군은 우등불에서 ‘조국’이라는 글자처럼 “온 인류, 각 민족에게 위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다시 없으리라 본다”라고 하셨다. 조국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다시금 확인케 하는 달이다.
6월은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선열들에 대한 추모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국민의 화합을 다지는 달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세계 경제대국의 위치에서 누리고 있는 이 풍요로움과 편안함은 피어린 항일투쟁으로 나라를 찾은 선열들, 가까이는 6･25전쟁의 참화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낸 호국영령들의 의로운 삶이 바탕이 되었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소크라테스가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했듯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자신을 희생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일 것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행동 중에 최고의 가치를 지닌 가장 고귀한 것으로 칭송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금 이기주의의 만연과 지역･계층･세대간 갈등 현상으로 공동체의식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전쟁 등 국난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가 늘어가면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건전한 국민의식의 확립이 필요하다. 이는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자신을 버리고 대아(大我)를 취한 선열들의 위국헌신 정신에서 그 정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선열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을 사회통합과 건전한 국민정신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국가보훈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보훈은 사회적 균열을 완화하고 국민역량을 결집해 나가는 통합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보훈제도와 국가의 흥망성쇠는 정비례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강한 국가 뒤에는 반드시 건강한 보훈정신이 있어 왔다. 오늘날 선진국들은 보훈기능을 통한 국민통합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나라 위한 헌신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고 심어지는 보훈시설을 정점으로 도시 설계를 하기도 한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는 파리 개선문 바닥에 프랑스 장병들의 한국전 참전을 기념하는 동판을 설치하였다. 파리 개선문이 어떤 곳인가 프랑스 수도 파리 중심부에 있는 프랑스 역사의 현장이자 영광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다.
보훈이야말로 국력을 모으고 국민을 단결시키는 원천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올해로 53회 현충일을 맞는다. 나라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국가의 제례일(祭禮日)로 현충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현충일은 6･25전쟁으로 전사한 전몰장병 합동추모식을 거행(1951～’56년)해 오다 1956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6월 6일은 망종일로 예로부터 제사를 지내는 풍습에서 택했다. 옛 자료에 의하면 고려 현종5년(1014년) 조정에서는 거란과의 제3차 전쟁(1010～1015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뼈를 집으로 봉송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한 기록이 있다.
6월은 많은 장병이 호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한 6･25전쟁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6일은 1년 24절기 중 망종일(亡種日)로 6월 6일 현충일 제정의 유래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현충일을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기억의 날)라 하여 5월 마지막 월요일에 추념행사를 갖는다.
그리고 유럽 국가들은 주로 제1차 세계대전 휴전일(1918.11.11)을 기념하여 현충일 행사를 갖는다. 1차 대전 때 참가했던 연합국인 프랑스, 영국, 캐나다, 호주는 11월 11일에 현충일 행사를 갖고 전사자의 넋을 기린다.
현충일 추모 풍습도 다양하다. 영국은 현충일을 ‘포피데이(Poppy:양귀비)라 하는데 가장 치열한 전투를 한 플랜더스 들판에 장병들의 핏자국마다 양귀비꽃이 피었다고 하여 이 꽃을 가슴에 달고 넋을 기린다고 한다.
이렇듯 각 나라마다 현충일에 대해 엄숙한 국가적 의식을 갖추어 행사를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나라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공동체라는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한편 현충일 행사는 국가유공자를 추모하기 위한 상징적인 행사이기는 하나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영예와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있어서 연 1회의 행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현충일을 전후한 일정 기간 동안 그분들의 공훈을 기리고 희생을 추모하는 다양한 보훈행사를 전개하고 있다.
‘보훈의 달’은 1963년에 처음으로 ‘원호의 기간’이라는 명칭으로 설정된 후 그 기간이나 명칭 등이 수차례 변경되다가 1985년부터는 ‘보훈의 달’로 명칭이 정착되고 6월 한 달로 기간이 정해진 것이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58주년이 되는 해이기도하다. 6월이면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 6･25전쟁의 참화를 떠올리게 된다. 흔히 동족상잔의 참상으로 생각하지만 만난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전쟁에 참전한 수많은 유엔군이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6･25전쟁으로 대한민국이 백척간두에 섰을 때 21개국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우리와 함께 싸웠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는 유엔기념공원(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이 있다. 우리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유엔군 장병들의 유해가 모셔진 세계에서 유일한 장소다. 그들은 죽어서도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묻혀있는 것이다.
매년 10월 24일에는 유엔 전몰장병의 추모제를 올린다. 지금도 11개국의 2300여 전사자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곳은 6･25전쟁 전사자에 대한 추모, 참전국에 대한 보답과 선린우호를 다질 수 있는 외교공원이자 역사의 산 교육장이기도 하다.
58년 전의 한국전쟁에서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적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우리는 이분들의 숭고한 정신 또한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지난 역사적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도록 시대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를 건설하여 우리의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어야만 할 것이다.
보훈은 결코 거창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 자신부터 가까운 곳에서부터 쉬운 것들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에는 우리 국군의 호국충정을 되새겨봄은 물론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역만리 낯선 나라에 참전한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공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국립묘지나 주변에 있는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현충시설을 찾아 참배하고 추모의 꽃 한 송이를 바쳐보자. 이웃의 국가유공자와 유족을 찾아 따뜻한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갖는 일이야말로 작은 나라사랑의 실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