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숭실고 2학년 12반. 생물시간 혈액 단원을 강의하고 있는 차정헌 교사의 옷깃에 검정색 무선 마이크가 달려 있다. 교실 뒤에는 카메라가 수업 장면을 녹화 중이다. 카메라 때문일까? 30여명의 학생 중 잠을 자거나 조는 학생이 보이지 않는다. 학교 스튜디오. 국어과 이향우 교사가 ‘현대시(詩) 특강' 강좌를 녹화하고 있다. 25분 강의는 주로 수능에 출제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를 골라 문제풀이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제작된 동영상 400여개가 학교 홈페이지 ‘숭실 사이버 스쿨'에 올라가 학생들에게 제공된다.
숭실고는 국내 최초로 ‘학교 단위 사이버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정규수업 외에 온라인에서 강의를 개설해 교과내용을 가르치는 새로운 학습 프로그램이다. 교사 27명이 참여하고 있는 ‘숭실 사이버 스쿨'에는 30여개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수업은 학년 초 강좌별로 수강생을 모집해 1년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사이버스쿨의 특징은 철저히 무학년·수준별 수업이라는 점. ‘고교수학을 위한 최소한의 중학 강의'는 학년에 상관없이 수학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PASS 수학'은 수Ⅰ·Ⅱ중 심화과정을 문제풀이방식으로 진행한다. 강의수준이 높아 상위권 학생들이 주로 듣는다. 물론 학년 제한은 없다.
수학과 김관중 교사는 “기존 교실수업은 수준이 다른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다 보니 상위권·하위권 학생 모두에게 불만이 많았다”며 “사이버스쿨은 이런 교실수업의 한계를 극복해 보자는 데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수업료는 물론 무료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한 사이버스쿨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전교생 1500명이 적어도 한 과목 이상이 강좌를 듣고 있다. 학원에 다니다 사이버스쿨 때문에 그만둔 학생 수도 꽤 된다고 한다.
2학년 김환경(17)군은 “수업이 끝난 후 국·영·수·사회·과학 5강좌를 듣고 있다”며 “모르는 부분은 다음날 선생님을 찾아가 질문을 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문지민(17)군은 “정규 교과에 없는 수업이 온라인에서는 강좌가 열려 유익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은 학생들의 출석 여부를 점검하고 강의 중 문제를 풀도록 지시한다. 동영상 강의에 빠지는 학생은 담당 교사가 불러 상담도 한다.
사이버스쿨이 문을 연 뒤 학교수업의 질(質)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생물과 차정헌 교사는 “수업내용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교사 간에 ‘누가 강의를 더 잘하나'하고 이야기를 한다. 수업방법의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교사 간 선의의 경쟁 분위기도 나타났다. 유영일 교감은 “강좌에 따라 학생들의 수강생 숫자가 다르고 또 매일 동영상 클릭 수가 공개된다”며 “교사들이 강의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학교측이 무엇보다 반기는 것은 수업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학습에 흥미를 잃었던 학생들이 온라인 강좌를 통해 수업을 따라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김관중 교사는 “수업시간에는 조용했던 한 학생이 온라인 강의에서는 질문을 열심히 하고 학업에 흥미를 갖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로 숭실고는 작년에 이어 2년간 서울시교육청 지정 ‘학력 신장 중점학교'로 선발됐다. |
기사최종편집일: 2023-06-22 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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