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사건’으로 아동성폭행범에 대한 엄벌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에서 8세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까지 하려 했던 40대 용의자가 경찰의 최첨단 디옥시리보핵산(DNA)분석을 통해 19년 만에 붙잡혔다.
성인으로 성장한 피해자가 19년 만에 TV에 출연해 실명을 내걸고 고통을 호소하면서 범인 검거에 성공한 이번 사건은 수사당국의 끈질긴 과학수사의 개가인 동시에 당사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계기로 인식되고 있다.
13일 미 CNN방송에 따르면 연방수사국(FBI) 텍사스 휴스턴 지부는 지난 1990년 당시 8세의 제니퍼 슈에트를 납치, 성폭행한 뒤 증거인멸을 위해 살해까지 하려 했던 데니스 얼 브래드퍼드(40)를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체포했다. 브래드퍼드는 1990년 8월10일 창문을 통해 침실에 들어가 제니퍼를 납치한 뒤 그녀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 풀숲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브래드퍼드는 납치과정에서 제니퍼가 잠에서 깨자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경찰이라고 속였으며 “달의 색깔이 바뀌면 네 엄마가 올거야”라고 안심시킨 뒤 “(달의 색깔이 안 바뀌었으니) 엄마가 안 오려나보다”고 말하며 제니퍼를 차로 이동시켰다.
제니퍼는 실신했고, 의식을 회복했을 땐 벌거벗은 몸에다 용의자가 휘두른 칼에 후두가 손상돼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제니퍼는 12시간가량 범행현장에 방치돼 있다가 극적으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사들이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으나 그녀는 높은 투지로 건강을 회복했고 말을 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 27세인 제니퍼는 지난 9월 CNN방송에 출연, “이 비극적인 사건은 나에게 국한된 게 아니라 밤에 잠자리에 드는 모든 어린 소녀들의 문제”라며 “난 수많은 여자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다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니퍼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면서 범인 검거를 촉구했다. 그녀는 “나는 (사건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서 “만약에 내가 이 일을 내 기억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면 경찰 수사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스스로를 ‘투사(FIGHTER)’로 불렀다.
사건 직후 경찰은 용의자가 현장에 남긴 속옷과 셔츠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너무 샘플이 작아 규명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에 19년 전 DNA 샘플을 최첨단 분석장비로 재분석해 용의자 검거에 성공했다. 브래드퍼드는 1996년 아칸소주에서 경찰에 검거된 적이 있으며, 당시 그의 DNA 샘플이 FBI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돼 있어 이번 수사에 활용됐다. CNN은 “이번 범인검거는 DNA 분석 및 과학수사의 결과”라며 “경찰이 제니퍼사건을 선택해 새 기법으로 추적한 성과물”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 천영식특파원 kkachi@munhwa.com
기사최종편집일: 2023-06-22 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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