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KBS 흥겨운한마당 작가 남화정
올해는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로운 내각이 들어서고, 그에 따라 앞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다. 옛 사람들은 바람직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으로 ‘예(禮)’와 ‘악(樂)’을 꼽았다. 고대 음악 이론서인 ‘악기(樂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악(樂)은 천지간의 사물을 서로 화합하게 하며,
예(禮)는 천지간의 사물을 질서정연하게 한다.
서로 화합하므로 만물이 모두 융화하여 공존하고,
질서정연하므로 만물이 모두 구별된다.
이런 기준에서 보자면, 예와 악은 한 나라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전 우주의 법칙을 이루는 두 기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어떤 ‘예’이고, 또 어떤 ‘악’이어야 하느냐는 왕조에 따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경우,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던 세종대왕이 그 기준을 제정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세종은 어느 음악인 못지않은 감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다.
먼저, 앞서 혼란한 시대에 흐트러진 음악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 표준 음고(音高)라고 할 수 있는 기본 율관(律管)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편경이라는 악기를 제작하도록 했다. 편경이란, 특별한 소리가 나는 돌을 깎아 12음을 내도록 만든 것인데, 세종실록에는 그 연주를 듣고 난 후, 악성(樂聖)이라 일컬어지는 신하 박연과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지금 소리를 들으니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율(律)을 만들어 음(音)을 비교한 것은 뜻하지 아니한 데서 나왔으니,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 다만 이칙(夷則) 1매(枚)가 그 소리가 약간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
하니, 연이 즉시 살펴보고 아뢰기를,
“가늠한 먹이 아직 남아 있으니, 다 갈지 아니한 것입니다. ”<세종실록 59권>
즉, ‘이칙(夷則)’이라는 음을 내는 돌이 미처 기준만큼 깎이지 않아서 음정이 틀린 것을 지적한 것이다. 요즘말로 하자면, 절대음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은 이러한 소양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듯, 직접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악, 훈민정음으로 지은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는 ‘여민락(與民樂)’ 등이 그 분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런 음악을 보다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창안한 기보법이 바로 ‘정간보’이다. 이것은 당시까지 음의 높낮이만 표시하던 기보법에서, 길이까지도 표현하도록 한, 최초의 기보법이다. 또, 당시는 상하가 모두 유교로 중무장하고 모든 것을 중국의 기준에 따르고자 애쓰던 시대였지만, 세종은 우리 고유의 음악을 찾고 발전시키는 일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아악(雅樂)은 본시 우리나라의 성음이 아니고 실은 중국의 성음인데, 중국 사람들은 평소에 익숙하게 들었을 것이므로 제사에 연주하여도 마땅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아서는 향악(鄕樂)을 듣고, 죽은 뒤에는 아악을 연주한다는 것이 과연 옳겠는가. <세종실록 49권>
예조에서 아뢰기를,
‘개국한 이래로 예악이 크게 시행되어 조정과 종묘에 음악이 이미 갖추어졌사오나 오직 민속 노래들의 가사를 채집 기록하는 법 마련이 없으니 실로 마땅치 못하옵니다. 이제부터 각 고을에 명하여 노래로 된 악장이나 속어임을 막론하고 오륜(五倫)에 합당하여 족히 권면할 만한 것과, 간혹 짝 없는 사내나 한 많은 여자의 노래로서 정칙에 벗어난 것까지라도 모두 샅샅이 찾아내서 매년 세말에 채택하여 올려 보내게 하옵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61권>
조선이 500년이라는 긴 역사를 이을 수 있었던 데에는 세종의 이러한 음악정책들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지도자에게서도 이러한 안목을 갖춘 문화 정책을 기대해 본다.
기사최종편집일: 2023-06-22 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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